안면도에서 수련회를 하루 앞둔 오후 신랑이 듣고 있던 쇼츠에 귀가 기울어졌습니다. 오은영 박사의 강의였는데, 요즘 부부들이 결혼 후 자녀 낳기를 꺼리고 두려워하는 이유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 요즘 아이들은 '생산재'가 아니라 '소비재'예요. 옛날 농경 사회에서는 아이는 낳으면 낳을수록 더 많은 것들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농사를 지을 노동력이 되었고, 나를 부양해줄 재원이 되었죠. 그러나 요즘은 그렇지 않습니다. 아이는 끊임없이 지원을 해줘야 하는 소비재로 바뀌었죠.
또한 지금 세대는 치열한 경쟁 속에서 자랐습니다. 이제는 자기 삶을 돌보고 싶은데 자녀 양육은 또 다른 고생의 시작처럼 느껴집니다. 자녀는 더 이상 인센티브도, 투자가치도, 생산성도 없는 존재처럼 여겨져 출산 동기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사랑해서 낳는 자녀를 경제적, 생선적 가치로 생각할 수 없는 것이기는 합니다. 자녀를 이미 낳아본 사람은 그 행복과 가치를 충분히 압니다. 그러나 아직 한 번도 경험이 없는 사람은 두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
이 이야기를 듣는데, 우리 세 아이들은 어떤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고민할 것도 없이 남편과 저는 "우리 아이들은 생산재야. 생산재." 왜 그럴까요? 쌍둥이 큰 아이들은 중2, 막내는 초등학교 6학년인데 지금까지 아이들은 영수학원에 다녀본 적이 없습니다. 피아노 학원 1년 다닌 것이 전부입니다. 그런데도 반에서 1등, 보는 시험마다 만점 가까이 받고, 반장도 하고, 동아리에 들어가 열심히 기타도 배우고 있습니다. 베스트인성상, 꿈끼대회 발표 우수상, 글짓기 장려상, 독서상 등 각 종 상을 다 쓸어 왔습니다. 얼마 전 학부모 총회에 갔는데, 진로담당 선생님이 "이 아이들은 1을 주문하면 9를 해오는 아이들이에요. 많은 선생님들이 좋아하는 아이들이에요." , " OO 이는 참 착하고 밝아요." 하고 칭찬해 주셨습니다. 객관적으로 인정받고 사랑받는 아이들이 된 것이 참 뿌듯하고 감사했습니다.
무엇보다 이 아이들이 교회에 친구를 많이 데려옵니다. 개척하고 목사님과 저는 열심히 길거리 전도를 했습니다. 몇 분이 왔다갔다 했지만 정착하는 분이 없어 당황스럽기도 하고 힘도 빠졌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세 딸들의 친구들이 한 명씩, 한 명씩 오기 시작했습니다. 그 친구가 다른 친구를 데려 왔습니다. 오늘은 너무 신기한 광경이 연출되기도 했습니다. 교회에 나온 지 얼마 안 된 친구가 자기 친구를 데려왔습니다. 그리고 그 친구에게 "일요일 나와, 나와서 예배드리고, 같이 점심 먹고 한 참 놀다가 가면 돼." 하고 전도하는 것이었습니다. 신앙이 있는 것도 아닌데, 본인이 나와서 함께 하는 것이 참 즐거우니 자연스럽게 초대의 말이 나오고,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전도한 것입니다. 기특하고 예뻤습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 교회는 다음 세대를 키우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점점 아이들이 늘어나고 있고, 2년 반 동안 쉬지 않고 예배를 드리는 아이들이 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아이 한 명에게 쓰는 한달 학원비가 평균 50만 원입니다. 우리는 세명이니 150만 원이 들어야 합니다. 150만 원씩 일 년이면 1800만 원이니 우리 아이들은 1800만 원을 벌어다 주고 있는 것입니다. 전도가 잘 안 되는 시대 친구들을 데려오니 준 사역자입니다. 무료로 사역자를 쓰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매주 토요일 예배를 위해 교회 청소를 합니다. 화수목 잠을 깨워 새벽에 일어나 새벽기도를 함께 합니다. 제 대신 빨래를 개고 정리합니다. 주일에 제가 15인 분 밥을 준비하면 저녁에 설거지가 많이 쌓입니다. 지친 저를 위해 반 강제이기는 하나 저녁 설거지를 해줍니다. 셋이서 한 명은 퐁퐁, 한 명은 헹굼, 한 명은 정렬을 담당하는데 셋이 티격태격, 하하 호호, 낄낄낄낄 대며 설거지하는 뒷모습이 얼마나 귀엽고 사랑스러운지 모릅니다.
어느날 교회 나오는 한 친구가 영수학원에 학원비를 60만 원 준다고 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남편에게 "아이들이 보물단지구만, 아이들 해외여행 한 번 시켜줘야겠어요." 했더니, 그러자고 백 번 공감하고 동의했습니다. 그래서 필리핀 4박 5일을 예약했다가, 아직 우리 형편에는 무리인 듯싶어 2박 3일 제주도 비행기 티켓을 끊었습니다. 즐겁게 잘 놀아라, 다 너희 덕분이다 딸들아!!!
오은영박사의 이야기를 들으며 요즘 젊은 부부들의 괴로움, 두려움이 많이 공감되었습니다. 저도 하던 일을 그만두고 세 아이를 육아할 때 "나는 누구인가? 내 삶은 어디에?"하는 고민을 한참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동의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 뿌리를 더 깊이 들어가면 "자녀 교육관"의 문제 더 깊이는 "행복이란 무엇인가" 하는 행복관,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인생관, 가치관"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개척한 동네는 특수성이 있어서, 아이들이 많이 방치되는 곳입니다. 교육열이 매우 낮고, 많은 아이들이 그저 집에서 게임하며 시간을 죽이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조금만 옆동네로 가면 분위기는 확 다릅니다. 밤 10시쯤, 당근으로 중고핸드폰 거래를 하러 옆동네 갔습니다. 아파트 단지 양 옆으로 노란색 학원 버스가 줄지어 수십대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학원에서 나오는 수많은 중고등학생들의 무리가 횡단보도글 건너고 있었습니다. 눈이 휘둥그래졌습니다. 이렇게 늦은 시간까지 학원에 메여있단 말이야? 말로만 듣다가, 눈으로 보니 체감이 되고 너무 불쌍해 보였습니다. 우리나라 전 지역에 수많은 아이들이 저렇게 내몰려 살아야 하나? 이런 사회를 만든 어른들의 잘못이다.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우리 부부는 아이들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잘 자라기를 바랍니다. 일단 이 세상은 죄와 죽음 아래 갇혀 있으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예수님의 죄사함과 구원입니다. 이 땅은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갖고 잠시 머무는 곳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부활의 산소망을 갖고 , 살아 있는 동안 우리에게 맡기신 사명을 충성스럽게 살아내는 것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바른 삶의 자세를 갖고 이 땅을 살아내는 것입니다. 점수, 좋은 대학, 돈 많이 버는 직업...... 그런 것은 따라오든 말든 간에 일단 하나님 앞에 부끄러움 없는 삶을 사는 아이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또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 부부는 아이들의 자기주도학습 능력을 믿었습니다. 시키지 않으면 시작하지 않는 수동성이 아직도 깊이 베어 있습니다. 그러나 점점 나아지고 있고, 나아질 것이며, 언젠가는 스스로 많은 일들을 주도적으로 해 나갈 것을 믿습니다. 지금 제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시간에도 아이들은 교회에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크고 하얗게 빛나는 십자가를 앞에 두고, 책상에 앉아 하루는 영어를 하루는 수학을 공부합니다. 수학은 EBS 무료 인터넷 강의로 하루 2~3개 강의를 예습하고 있고, 영어는 word master와 다른 교재로 듣기 평가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처음 1년은 교회 여러 아이들과 함께 리틀팍스로 수업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시점이 되니, 개개인 차이가 커져서, 지금은 우리 아이들끼리만 하고 있습니다. 단어를 외울 때는 문장을 통째로 외우고, 한글 문장을 읽어주면 영작을 하는 방식으로 시험을 봤습니다. 문법도 동시에 훈련시키려고, 현재형 문장을 미래형이나 과거형으로 바꿔가며 시험을 봤습니다. 이 모든 과정은 영어를 좋아하고 잘하는 남편이 했습니다. 또 저는 수학을 좋아했기에, 아이들이 모르는 것이 생기면 설명해 주었습니다.
이쯤 되면, 부부가 영어와 수학을 잘해서 가능한 거 아니냐? 중학교 영어수학을 가르칠 수 있는 부모는 많지 않다고 반문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닙니다. 어느 순간부터 아이들은 저한테 묻지 않습니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정말 많이 물었습니다. 그런데 꾸준히 공부 시간을 매일매일 채우도록 시키고, 학교 선생님께 더 자주 질문하도록 하고, 좋은 교재를 선생님께 질문해서 알아오도록 시켰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가져온 유인물을 보면서, 선생님 정말 요약 잘해 놓으셨다고 말해 주었고, 인터넷 강의하시는 선생님도 정말 잘 가르치신다. 하며 신뢰하도록 도울 뿐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스스로 알아서 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영어는 영어를 잘하는 아빠가 있었기에, 어느 정도 괘도에 오르기까지 시간이 많이 단축되기는 했습니다. 학원에서 2~3년 걸릴 것을 1년 만에 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기까지 더 필요했던 것은 영어 실력이 아니라 공부하는 자세를 잡아주는 일이었습니다.
정말 치열한 싸움이었습니다. 이 싸움은 주로 남편이 했습니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꾸준히 하는 것을 힘들어 했습니다. 틈만 나면 쉬고 싶어 했고, 집중력도 많이 떨어졌습니다. 특히 막내가 심했습니다. 4~5시간 앉아 있는데, 공부한 결과를 보면 영 엉망이었습니다. 다른 생각을 많이 하며 효율이 없었습니다. 단어 찾는다고 핸드폰 네이버 사전을 검색하다가, 네이버 웹툰을 몰래 보았습니다. 틀리는 것을 또 틀리고 또 틀리고, 이건 물에다 썼나, 머리가 나쁜가? 반복해서 설명해도 또 틀려서 맥이 풀리고 화도 많이 났습니다. 자세히 보니 막내에게는 대충 때우려는 좋지 못한 삶의 태도가 뿌리 깊었습니다. 사실 공부가 아니라, 이 자세가 이 아이의 삶 전체 순간순간마다 안 좋은 결과를 가져올지 너무도 잘 알기에, 남편은 정말 치열히 씨름했습니다. 말로 책망하기도 하고, 그 삶의 자세가 막내에게 얼마나 마이너스가 되는지 자세히 설명해 주고, 당근도 주고, 채찍도 주고 아무리 해도 안되자, 무섭게 막대기를 한 번 든 적도 있었습니다. 정말 얼마나 많은 대화를 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면서 막내는 아빠가 자신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혼낼 것이고, 그러다 죽겠다. 내가 바뀌는 게 빠르겠다 생각했는지 어느 날 태도가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자신의 성적이 올라가기 시작하니, 스스로 보람되고 뿌듯했나 봅니다. 저는 열심히 칭찬하고 격려해 주었습니다. 그렇게 2년의 긴 싸움 끝에 요즘 아이는 한 문장 한 문장 제대로 공부하고 있고, 스스로 매우 만족스러워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제일 좋은 학원은 부모님입니다. 아이들이 스스로 공부하는 자세를 익히도록 끊임없이 관심 가져주고, 격려해주고, 때로 책망도 해주는 이 시간, 그것이 가장 좋은 학원입니다. 그러면 아이들은 공부하는 자세가 생깁니다. 자세가 잡히면 성적은 자연스럽게 올라갑니다. 더이상 부모가 함께 하지 않아도 알아서 합니다. 공부만이 아닙니다. 빨래 개고, 이불 개고, 자기 방청소하고, 밥상에 숟가락 올려놓고, 다 먹으면 설거지 통에 담그는 훈련, 교회 청소하는 훈련, 아이들이 오면 핸드폰 내려놓고 반갑게 대화하는 훈련, 음치여도 큰 소리로 찬양하는 훈련, 크리스마스 성탄절 때 연극하는 훈련, 1박 2일, 2박 3일 함께 여행하며 함께하는 훈련, 새벽기도 훈련 등 많은 훈련을 받고 있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 아이들이 얼마나 성숙해졌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런 훈련만 있으면 아이들은 숨 막힙니다. 숨 막히지 않게 아이들을 데리고 얼마나 많이 놀러 다녔는지 모릅니다. 롯데월드, 에버랜드, 서울랜드 연간 회원권을 끊어서 산책하듯이 함께 다녔습니다. 교회에 주일 예배가 끝나면 산으로 바다로 짧지만 재밌는 여행을 많이 다녔습니다. 주변 수목원, 공원, 박물관, 인라인 스케이트장, 배드민턴, 피구, 100미터 달리기, 등산도 하고, 아이들의 친구들과 좋은 추억을 많이 만들어 주었습니다. 와플데이를 만들어서 정말 이제 쳐다보고 싶지 않을 정도로 와플을 많이 구워 먹었고, 솜사탕 데이를 만들어 포도, 딸기, 오렌지, 멜론 맛 솜사탕을 원 없이 만들어 주었습니다. 요리데이도 만들고, 파자마 파티도 열어서 1박 2일 신나는 추억도 만들어 주었습니다. 워낙 남편 목사님이 여행을 좋아해서, 이 시간은 사역이라기보다 본인이 가고 싶은 여행을 아이들을 데려가는 듯했지만 말입니다. 그리고 떡볶이를 좋아하는 아이들을 위해 친구들을 불러 자주 떡볶이도 해주고, 여름이면 딸기스무디, 블루베리요구르트, 레모네이드를 타주고, 겨울이면 코코아가 교회에 떨어지지 않도록 듬뿍듬뿍 채워놓았습니다. 오늘도 새로운 친구가 와서 컵라면과 솜사탕을 맛있게 먹고 즐겁게 놀다 갔습니다.
목사부부라 가능했을까요? 직업이 없어서? 아닙니다. 저는 주3~5일 정도의 근무를 꾸준히 했습니다. 남편은 주1회 다른 일을 하고, 목회를 했습니다. 우리는 개척한 지 얼마 안되고, 또 자원해서 내는 헌금 외에 일체의 헌금을 받지 않기로 원칙을 세웠기에 사례비도 전혀 없습니다. 몇 몇 귀한 분들이 후원을 해주셔서 정말 감사하지만 월세도 안나오는 금액입니다. 그래서 이 후원비는 모두 교회 아이들 간식, 식비, 여행비로 다 씁니다. 거기에다 그동안 열심히 저축했던 것 플러스 생산재 아이들(학원비가 전혀 안드는) 덕분에 이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이야기가 길어졌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소비재가 아니라 생산재입니다. 생산재가 되도록 하는 것은 부모의 몫입니다. 이 세상에서 성공하려면 이렇게 해야 한다는 그런 패러다임에 묶이지 마십시오. 보다 근본적으로 어떤 아이로 키울 것인가로 가면 길은 정말 쉬워집니다.